청정의 섬 - 서호주 로트네스트
여행 2008. 3. 20. 22:28
놀라하네, 저 바다에 누워…‘청정의 섬’ 서호주 로트네스트
2008년 3월 20일(목) 오후 5:27 [경향신문]
당신은 여행 초보인가? 아니면 여행 고수인가?
여행이라는 게 자신이 좋아하면 그뿐이지 단계나 급수가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여행만큼 초보와 고수의 차이가 나는 분야도 드물다. 초보자들은 랜드마크를 좇게 마련이다. 호주 여행을 예로 들어보자. 시드니나 골드코스트를 제쳐두고 먼저 남쪽 섬 태즈매니아를 보겠다거나 서호주의 퍼스를 찾겠다는 사람은 드물다. 초보자는 엽서나 포스터에 나오는 곳에서 ‘눈도장’을 찍고 나서야 다른 곳에 눈길을 주게 된다. 시드니를 한 번 봐야 헌터밸리를 기웃거리고, 멜버른과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찾은 다음 야라밸리와 바이런베이 같은 곳을 들추게 마련이다.
물빛이 아름다운 톰슨베이 |
# 주요 이동수단은 자전거
초급자는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지만 고수들은 촉각과 미각은 물론 온몸의 더듬이로 세상을 느끼려 한다. “현지 와인과 맥주는 어떤 맛일까.” “이 동네 사람들은 어디로 피크닉을 가지?” “자전거 하나 빌려 타고 해변에서 놀다 올까.”
초보자는 캥거루와 코알라를 보고 좋아하지만 고수들은 ‘DOME’이란 호주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카푸치노를 즐긴다. 스포츠 모자에 흰 운동화를 신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뺑뺑이 도는 게’ 초보라면 바와 책방, 뮤지엄을 뒤적거리는 게 고수다.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현지인처럼 노는 게 여행 고수다.
그럼 호주에서 여행 고수들이 딱 반할 만한 곳은? 아마도 서호주 정도 될 듯싶다. 서호주의 슬로건은 ‘Real Austrailia’. 진짜 호주는 여기 있다는 자부심이다.
서호주의 주도 퍼스에서 19㎞ 떨어진 로트네스트 섬(Rottnest Island)에 다녀왔다. 로트네스트는 사막 한가운데 솟아 있는 기이한 바위숲인 피너클스, 콜로니얼 양식의 고건축물이 즐비한 프리맨틀보다 유명하지 않다. 호주 사람들이 한나절 정도 피크닉을 다녀오는 섬이다. 퍼스 항구에서는 배로 1시간 거리, 노던 포트에서는 20분 거리, 프리맨틀에서는 30분 거리다.
이 섬이 좋은 이유는? 서호주인의 여행 방식과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다. 거기선 백사장에 누워 선탠을 즐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스노클을 하거나, 카누를 타는 것이 전부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논다. 섬은 물론 아름답다. 지도 한 장 들고 자전거를 끌고 로트네스트 섬에 들어갔다. 이 섬의 운송수단은 자전거다. 섬 내부엔 최근 버스가 들어오긴 했지만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것이다. 대부분은 자전거를 탄다. 어깨가 듬직한 아버지들은 두어살배기 아이들을 아예 수레에 태워 자전거에 매달고 다닌다. 가족들이 자전거를 타고 섬의 곳곳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서호주인의 삶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섬의 길이는 11㎞, 폭은 4.5㎞다. 한 바퀴 도는 데 5시간이나 걸린단다. 로트네스트 홍보매니저 헨리는 시간이 없다면 톰슨베이를 가장 먼저 찾으라고 귀띔했다.
톰슨베이는 자전거로 10분 거리다. 바다는 아름다웠다. 10여명이 난파돼 죽은 뒤 생겼다는 등대 아래에 500쯤 되는 백사장이 펼쳐졌다. 여행자들은 열 명이 채 안됐다. 한 커플은 선탠 중이었고, 다른 커플은 파라솔 아래 앉았다. 물빛은 층층 다른 색을 띠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고작 예닐곱명이 차지하고 있다니….”
자전거를 타고 섬을 돌고 있는 관광객. |
자전거를 타고 다른 해변도 기웃거렸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카누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제 중학생쯤 되었을 만한 아이들이다. 영어 몰입이니, 24시간 학원이니 하면서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우리 실정을 떠올리니 마음이 씁쓸했다. 사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일본인 케니(28)도 밤낮없이 일하는 일본이 싫어 호주로 왔다고 했다. 페리 회사에서 아시아 담당 매니저로 있는 그는 영어도 능숙했다.
“아버지가 IBM에서 일했는데 새벽 한 두 시는 물론 새벽까지도 일을 했어. 토·일요일도 따로 없고. 그런데 그게 너무 싫더라고.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거든. 뉴라이프를 찾다가 퍼스까지 오게 된 거야. 운 좋게도 여기서 일자리를 얻었지.”
케니는 “지금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그가 부럽다.
해변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그늘이 있는 잔디 놀이터에선 소꿉장난을 하는 아이들도 보인다. 숲 그늘에서 잠깐 쉬다가 쿼카라는 동물을 발견했다. 무릎 높이보다는 조금 작은 키에 토끼만한 쿼카(Quokka)는 영락없이 쥐를 닮았다.
로트네스트란 이름이 붙은 것도 실은 쿼카 때문이다.
유래는 이렇다. 서호주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네덜란드인. 1696년 탐험가 윌리엄 드 블라밍은 섬에서 쥐같이 생긴 동물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가 붙인 이름이 ‘Rats nest’. 쥐의 소굴이란 뜻이었다. 흑사병에 고생께나 했던 유럽인들은 질겁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동물은 쥐가 아닌 쿼카라는 동물로 판명됐다. 지금은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 캥거루나 웜뱃처럼 아기주머니가 붙어 있다. 관광객들을 무서워 하지 않아 도망가지도 않는다.
#1900년대부터 피크닉 포인트로 유명
섬에는 호수도 많다. 그 중 핑크레이크도 있었다. 핑크색 물빛을 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1시간을 달려갔더니 아쉽게도 호숫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신 서해안에서 자라는 붉은 칠면초 같은 풀들이 보였다. 아마도 붉은 빛을 띠는 풀 때문에 물이 반사됐나보다. 이렇게 아름다운 포인트가 많다보니 로트네스트 섬은 오래전부터 서호주 사람들의 놀이터였다. 1900년대부터 이미 피크닉 포인트로 유명했다. 섬에는 작은 호텔과 콘도는 많지만 주거용 주택은 없다. 서호주 정부가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입구에 ‘여기는 A급 보호지역입니다’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로트네스트 섬에서 딱 한나절을 보냈다. 섬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다 돌아보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했다. 나뭇잎도 만져 봤다. 벤치에 누워 30분 정도 낮잠도 잤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로트네스트 사진집에는 캥거루 대신 얘들과 자전거 타는 호주 아버지의 환한 표정이 들어갈 것이다.
여행길잡이
서호주 직항편은 없다. 홍콩까지 간 뒤 홍콩에서 퍼스로 들어가면 된다. 캐세이 퍼시픽이 홍콩에서 주 5회 퍼스 직항편을 띄운다. 인천~홍콩구간은 3시간30분, 홍콩~퍼스는 7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캐세이 서울사무소 (02)311-2730
3월까지는 서머타임이 적용돼 시차가 없다. 4월부터는 한국보다 1시간 늦다. 호주는 팁을 안 줘도 된다.
로트네스트 섬에 들어가는 데는 노던포트가 가장 가깝다. 어른은 53달러, 13~16세의 청소년은 43달러, 4~12세의 어린이는 22달러, 1~3세는 5달러다. 자전거 대여료는 어른 24달러, 어린이 12달러, 스노클링기어는 17달러. 섬에서도 자전거를 빌릴 수 있지만 복잡하기 때문에 미리 빌려 가는 게 편하다. 자전거 열쇠까지 챙겨준다. 배는 하루에 5편 정도. 점심을 포함하는 패키지도 있고, 2시간 가이드 투어가 담긴 패키지도 있다. 숙박과 연계한 패키지도 있다. 섬 내에 집은 없지만 호텔과 콘도는 많다. 호텔은 대개 4성급이다. 섬 내에는 돔(DOME) 커피숍이 있다. 로트네스트 페리(www.rottnestexpress.com.au).
퍼스는 대도시지만 조용하다. 바와 커피숍이 몰려 있는 곳은 프리맨틀. 건물 대부분이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어 운치도 있다. 노트르담 대학이 있는 대학거리로 젊은이들이 많이 몰린다. 카푸치노 거리에는 카푸치노를 파는 카페들이 많다.
프리맨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피싱보트 하버에는 식당들이 몰려 있다. 시셀로스 식당은 ‘피시 앤드 칩스’ 전문점. 선원들이 먹었던 방식대로 종이 위에 물고기 튀김과 감자 튀김을 내놓는다. 맛이 일품이다. 홍합탕은 소스가 매콤해 잘 어울린다. 시셀로스(www.cicerellos.com.au). 그 옆에 있는 리틀 크리에이처는 하우스 맥주집. 고추를 넣어 매콤한 맥주까지 판다.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리틀 크리에이처란 술 속에 살아 있는 미세한 효모를 일컫는다. 리틀 크리에이처(www.littlecreatures.com.au).
<서호주관광청한국사무소(02)6351-9355>
〈 서호주 | 글·사진 최병준기자 〉[스포츠칸 '온에어' 원작 연재만화 무료 감상하기]-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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