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한국 경제 다섯 가지 패러독스
최근 한국 경제는 대외거래, 성장, 실물, 민생, 금융의 다섯 가지 부문에서 패러독스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정부 경제 정책 수립과 민간의 의사 결정에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높다. 따라서 현 경기 국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패러독스의 실체와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 수출 호조
첫째,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출은 호조세를 지속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문제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출은 2008년 1/4분기에 전년동기대비 17%대의 증가율을
기록한 데 이어, 4월에도 27%의 호조세를 지속중이다. 이는 대미 수출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외의
지역, 특히 중후진국들에 대한 수출 경기는 호조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의 지역별 수출증가율을 살펴보면, 미국에
대한 수출은 전년동월대비 0.9%의 감소세를 기록한 반면, 중국 17.9% 아세안 23.8%, 중동 43.9%, 중남미
28.5%, 러시아 82.6% 등 수출 신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5%대 GDP 증가에 0%대 GNI 정체
둘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높은데, 국민총소득(GNI)은 늘어나지 않고 있다. 외형적인 경제성장률은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나, 실질 국민 소득이 정체되어 국내 경제 성장의 과실이 해외로 이전되고 체감 경기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경제성장률, 즉 실질 GDP 증가율은 2007년 1/4분기에 전년동기대비 5.7%로 잠재성장률 수준인 4%대 후반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국내 경제 주체들의 구매력을 의미하는 실질 GNI 증가율은 0.0%로 정체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초래한
원인은 국제 원자재가 및 곡물가 급등으로 수입 단가 상승률이 수출 단가 상승률을 크게 상회한 데에 따르는 교역 조건 악화에 있다.
■높은 성장 하에 저조한 고용 창출
셋째, 생산 활동은 호조세를 지속하고 있으나, 고용 창출력은 급감하고 있다. 경제성장률과 궤적을 같이하는 산업생산 증가율은
2008년 1/4분기에도 10%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취업자 증가 수는 지난 3월 18만 명, 4월 19만 명
수준에 그쳐 정부 목표치인 35만 명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취업자 감소세 지속, 괜찮은 일자리 부족에 의한
구직단념자 문제 해소 미흡 등 질적인 고용수준도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건 악화의 원인은 고용의 상당 부분을
흡수해주는 서비스업 부문이 내수 부진으로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도 신규․확장 투자보다는 생산성 개선과 같은 대체․보완
투자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정부 활성화 의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물 투자
넷째, 정부의 투자활성화 의지는 높은데, 실물투자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는 투자 관련 규제 완화, 세제
개편 등 다양한 투자 활성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투자는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계정상 설비투자
증가율은 2008년 1/4분기에는 1.7% 증가에 그치고 있으며, 건설투자는 0.7%의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우선 설비투자
부진은 새 정부의 투자 활성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 서브 프라임 문제, 원자재 급등, 내수 경기
하강 등으로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또한 건설투자가 침체를 보이고 있는 것은 민간 부문이
침체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공공 부문에서조차도 이전 정부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보류되고 새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도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글로벌 약달러에 역행하는 원화 환율
다섯째, 글로벌 약달러 기조에 역행하여, 원화가 ‘나 홀로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국제 외환시장에서는 주요 통화들이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원화 환율은 2007년 4/4분기 이후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는
내국인의 해외 직․간접 투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2007년 하반기에 들어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 정체와 증시 이탈
등으로 자본수지가 대규모 적자로 돌아선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특히 2008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경상수지 적자마저 폭이
확대되어 원화 약세를 가중시키고 있다.
Ⅱ. 하반기 경제 운용 방향 및 경제 정책 과제
■현 경기 국면 진단 및 하반기 경제 전망
(현 경기 국면 진단) 경기동행지수와 선행지수를 기준으로 판단해 볼 때, 현재 한국 경제는 경기 하강 초기 국면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 수준 이상의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는 내수 부문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외수(순수출) 부문의 성장 기여도가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하반기 전망의 전제 조건) 하반기 경제 전망에 앞서 밝혀둘 것은 첫째 북핵 문제와 관련된 동북아 정세에 큰 변화가 없고,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지 않음을 전제로 하였다. 둘째, 2008년 국제 유가가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연평균
100달러 내외를 유지하고, 원자재 가격도 현 수준에서 급등세를 보이지 않으며,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975원 내외가 유지됨을
가정하였다. 셋째, 미 서브 프라임 부실이 우리 주요 수출 대상국인 중국, ASEAN 등의 신흥 공업국 경기에는 제한적 영향만
미치는 것으로 가정했다.
(경제성장률 및 경기 추세 전망) 이러한 전제 조건들 하에서, 2008년 경제성장률은 2007년의 5.0%보다 소폭 하락한
4.9%로 전망된다.(2007년 10월 시점 전망치 5.1%보다 0.2%p 하향 조정) 상반기에는 내수 부문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수출 경기 호조가 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여 경제성장률은 전년동기대비 5.3%가 예상된다. 그러나 하반기에 들어서는 내수
침체가 심화되는 가운데 수출 경기도 일정 부분 둔화될 것으로 보여, 경제성장률은 4.5%로 낮아질 전망이다.
(거시 경제 부문별 전망) 부문별로는 첫째, 급격한 소비 위축으로 내수 경기 부진이 우려된다. 구매력 저하로 민간소비가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가운데, 내외수 경기 하강으로 기업 투자 심리가 위축되어 설비투자도 대체․보완 투자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수출 경기는 전반적 호조 속에 하반기에 다소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대 선진국 수출은 부진할 수 있지만,
신흥국 수출 확대가 이를 상쇄시켜 전반적인 수출 경기는 호조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원유, 원자재 곡물 등의 수입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높은 환율이 서비스 수지를 개선시켜 경상수지는 소폭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고용 창출력 급감과 물가 상승으로 민생 경제 악화가 전망된다. 인플레 압력은 하반기로 갈수록 완화는 되겠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불어 내수 경기 침체로 인한 고용 상황 악화가 예상되어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원화 약세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화 환율은 연간 기준으로는 2007년 대비
약세(상승)를 보일 것이나, 상반기보다는 하반기가 다소 높아지는(절하) 추세가 전망된다.
한편 2008년 국내 금리는 경기 상황 악화를 반영하여 2007년 대비 소폭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경제 운용 방향
하반기 경제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에 대비하여 정부는 향후 경제 운용의 주안점을 첫째, 물가 급등 방지와 고용 확대를 통한
서민 생활 안정에 두어야 한다. 즉 물가 안정 및 고용 개선 노력으로 서민 경제의 실질 구매력이 급감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다만 올해 중에는 최근의 높은 인플레 압력이 세계적인 현상임을 감안하여 정부의 물가 안정 목표를 현재의 2.5~3.5% 수준에서
4% 이내 정도로 상향조정하여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재정 지출 확대 정책 등을 통한 경기 급락 방지가 필요하다. 하반기 내수 침체에 대비해서는 적극적인 재정 확대
정책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통화 정책은 물가 안정과 상충되어 운용의 폭이 제한적이지만, 재정 정책은 물가 자극은 덜하면서도
내수 부양과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셋째, 시장 경쟁 원리 복원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정부 주도나 개입을 통한 경제 운용은 단기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보다는 가계와 기업의 민간 부문
자율성을 확대시켜 시장 경쟁 원리를 복원함으로써, 외환위기 이후 취약해진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장기적인 관점의 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경제 정책 과제
이러한 경제 운용 방향을 바탕으로 정부가 하반기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경제 정책 과제로는 첫째, 적극적인 물가 안정 노력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하여 기본적으로는 내수 경기가 급랭하지 않는 한 보수적인 금리 정책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시장 지향적 물가 안정 정책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로는 유통․물류 개선 등 효율성 제고 정책을
추진하여 불필요한 인플레 압력을 제거해야 한다. 또한 최근 국내 물가 급등의 주된 요인이 환율 상승에 있는 점을 감안하여, 환율
급등락 방지를 위한 당국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경제 고용 창출력 강화를 통해 내수 시장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 제고,
마찰적 실업의 축소 등을 통해 실질적인 고용 시장이 개선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고용 유발 효과가 높은 건설 산업의 경기 침체
방지를 위해 공공 건설 경기가 보다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또한 감세뿐만 아니라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 추경 편성 등 재정
지출 확대 정책도 요구된다.
셋째, 성장잠재력 확충의 핵심인 기업 투자의 시급한 활성화가 필요하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단편적인 규제 완화 정책과
더불어, 기업 활동 관련 세법의 정비, 법치주의에 기반으로 하는 노사 간 자율적 교섭 문화 정착, 기업가 사기 진작을 위한 기업
친화적 사회 분위기 조성 등을 망라한 ‘팩키지형 투자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외국 기업에 대한 원스톱 행정 서비스
강화, 외국 기업인의 주거 인프라 개선 등을 통해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 활성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유일한 성장 엔진인 수출 경기 호조를 유지해야 한다. 대 선진국 수출은 경기 하방 리스크에 유의하면서, FTA와
같은 자유무역의 확대, 무역 역조 개선 등과 같은 중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목표로 접근해야 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신흥국의 경우 우리 기업들의 적극적인 수출 시장 진출을 유도하는 인센티브 정책이 요구된다.
다섯째, 금융․자산 시장 변동성 축소를 통해 안정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 시장 급변동을 유발하는
정책 생산은 지양되어야 한다. 또한 부동산 시장 정책은 시장 수급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안정화 노력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특히 국내외 직․간접 투자 등과 관련된 글로벌 유동성의 유출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여 투기 자본의 국내 시장 교란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